“내가 갖는 그림에 대한 집착, 기쁨, 고통을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나는 아주 오래전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지켜본 적이 있네. (…) 그런데 죽어가는 그 비참한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빛과 그림자 속에 드러난 색을 구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네. 나에게 그렇게 많은 의미가 있었던 얼굴인데 평소의 습관이 그런 반사작용을 일으켰던 거지. 나는 파란색, 노란색 그리고 회색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네. 그것은 바로 죽음이더군”모네는 살아생전 자신의 열렬한 후원자이자 벗이었던 조르주 클레망소(
카미유 동시유(Camille Doncieux, 1847~1879)!1865년, 모네는 그림 모델을 찾다가 당시 열여덟 살이었던 카미유를 만나게 된다. 가난한 모델과 무명 화가의 만남! 카미유를 처음 만났을 때 모네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 역시 화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경제적 좌절과 고난으로 방황하던 시기였다. 두 사람은 서로가 처한 어려움 속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면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리고 모네는 카미유에게 청혼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모델을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보던 모네의 부모는 두 사람의 결혼을 극렬하게
푸른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땅 위에서부터 피어오르고 언덕 위 들판에는 심술궂은 바람이 불어와 들꽃들의 잎사귀를 이리저리 흔들어 놓고는 여인이 입은 하얀 드레스 자락도 단숨에 휘감아 버렸다.하늘 위로 높이 올려 든 여인의 파라솔 안으로는 들판의 푸르름이 가득 들어와 땅과 하늘의 경계를 나누고 바람을 타고 내려온 가느다란 구름은 여인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수줍은 그녀의 얼굴을 살포시 지나간다. 언덕 아래에 있는 누군가를 응시하고 있는 듯한 무표정한 여인의 창백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발그스레한 볼 위로 놀란 토끼 눈을 한 소년이 저 멀리
2022년 10월 14일 오전 11시 SNS에 라이브(live)로 올라온 숏 영상의 한 장면이 빠르게 전파되면서 세계인을 경악하게 하였다.“예술과 삶 중에 무엇이 더 가치가 있나?”“그림을 보호하는 것과 우리의 지구와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 중에 어디에 더 관심이 있는가?”영상 속에는 하얀색 바탕에 검정색상으로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이란 글씨가 적혀진 티셔츠를 착용한 두 명의 여성이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 43번 방을 점거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 전시된 네덜란드 출신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 ‘해바라기
얼마 전 ‘그림값의 비밀(양정무, 2022)’이란 책이 모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미술작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미술 관련 책을 여러 편 출간한 이 책의 저자인 미술사학자 양정무 교수는 책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그림은 두 번 태어납니다. 화가의 손에서 한번, 그리고 컬렉터의 품 안에서 또 한 번 태어납니다.”미술에 대한 투자 붐이 일면서 미술작품을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투기 자산의 일부로 바라보는 양상이 부상하면서 새로운 투자처를 갈망하는 자산가들에게 미술 시장은 무한대의 매력적인 영역이 아닐 수 없다.자본시장의 새로운
“비극으로 보이는 삶이더라도 나는 내 삶을 완수하고 싶었다”카미유 클로델은 프랑스 남부의 한 정신병원에 수감 되어 있다. 작업실에서 작품 제작을 하던 도중 그녀는 강제로 이곳으로 끌려왔다.그리고 이후 30년 동안 그녀가 7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소망했던 조각을 향한 꿈을 다시는 펼칠 수 없는 고립 상태로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카미유는 사랑하는 연인 로댕을 통해 자신의 꿈을 펼쳐보려 하였으나 끝없는 비극이 그녀의 인생을 막아섰다. 천재 조각가가 탐낼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하늘이 그녀에게 준 재능은 모두 그녀의 불행을 위해 사용되었다.”한 중년 남자가 악마의 모습을 한 나이 든 여인에게 이끌려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다. 그 뒤로 젊은 여인이 무릎을 꿇고 남자와의 이별을 슬퍼하며 애원하듯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으려 하지만 남자는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고 이미 나이 든 여인에게로 돌아서 버렸다. 단지 남자는 미련 한 자락이 남았는지 뒤에 있는 여인에게 뻗은 손을 거두지 못하고 있을 뿐.이 작품은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2층 회랑에서 만날 수 있는 ‘중년(The Age of Maturity, 1897)
현대미술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스페인의 두 거장 피카소와 달리는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라는 미술 사조를 통해 예술의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진화되어갈지를 통찰한 선지자였다.그들은 예술가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예술적 영감을 뮤즈를 통해 찾고자 했다. 그러나 피카소가 미술사에서 여성 편력이 가장 심했던 화가로 끊임없이 새로운 뮤즈를 찾아 나섰던 것과는 다르게 달리의 시선은 평생 한 여인만을 향해 있었다.그에게 아내 갈라는 사랑하는 뮤즈이자 어머니였고 모든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그를 구원으로 안내하는 신적인 존재였다.그녀는 달리의 기이한
예술사의 한 페이지를 흥미롭게 장식하는 이야기 가운데에 달리와 갈라의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달리의 무수한 작품에는 그녀의 부인 갈라가 등장하는데 특히 그가 그린 종교화에 성모 마리아나 예수의 얼굴 대신 갈라의 얼굴을 이입시키면서 신학자들 사이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내 어머니 보다, 내 아버지 보다, 피카소보다 갈라를 더욱 사랑했다. 그녀가 나를 치유했다.”달리에게 갈라는 아내이기 이전에 어머니, 혹은 본인의 삶을 행복으로 안내하는 신적인 존재였다. 그는 그녀의 이미지를 신화에 등장하는 여인이나 성모 마리아, 또는 예
2017년 7월 살바도르 달리 사후 28년 만에 그의 묘지가 파헤치는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61세의 마리아 필라 아벨 마르티네즈(Maria Pilar Abel Martinez)라는 여성이 살바도르 달리의 생물학적 딸이라고 주장하며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하고는 3,700억이 넘는 달리 재산 상당 부분의 상속을 요구하고 나섰다.그녀는 타로 카드로 다른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점성술사’로 자신의 어머니가 1950년 초반 달리가 살았던 스페인 해변 도시 포트리가트 지방에 체류할 때 달리와 인연을 맺어서 그녀를 낳았고 본인은 8세
1936년 런던에서 초현실주의 전람회가 열렸다. 그런데 이날 행사 개막식에 초대된 한 작가가 강연하는 도중 청중 앞에서 쓰러지는 일이 발생한다. 그는 강연을 위해 단상에 오를 때부터 아주 괴기스럽고 특이한 복장으로 청중의 놀라움을 자아냈는데 검은색 구식 잠수복에 헬멧을 착용하고 한 손에는 당구 큐대를 다른 한 손에는 두 마리의 러시아 사냥개의 목줄을 끌고 단상 위에 나타났다.그러나 그가 착용한 헬멧과 밀폐된 잠수복에 막혀서 그의 목소리를 청중들에게 전달할 수 없었고 본인 또한 공기가 유입되지 않아 숨이 막히면서 강연 도중 쓰러지게
10월의 마지막 날인 10월 31일은 핼러윈데이(Halloween Day)다. 죽은 이들의 영혼을 쫓기 위해 귀신이나 괴물 등의 다양한 복장과 분장을 하고는 길가나 집 앞에 ‘잭오랜턴(Jack-O’-Lantern)’이라 불리는 호박 등을 설치한다. 이 축제는 켈트 문화에서 유래하여 영국 등 북유럽과 미국의 축제로 자리 잡았으나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낯설지 않은 문화가 되었다. 이날이 되면 아이들은 유령이나 흡혈귀, 해골 등의 복장을 하고는 “사탕을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치겠다(trick or treat)”라고 외치며 잭오랜턴이 켜진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과 환상의 세계로 초현실주의 미술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친절하게 안내해준 달리!"내가 미쳤다고? 그런데 미친 사람과 내가 유일하게 다른 점은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지." 자신을 향해 “미쳤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태연하게 되받아쳤던 그는 평생 상식을 깨는 예술을 추구하였지만, 삶 전체가 비정상적으로 취급받는 것에 대해서는 반박했다.스스로가 동시대 최고의 예술가임을 자칭하며 ‘살바도르 달리가 되는 것’이 최고의 야망이라고 하던 그를 떠올릴 때 제일 먼저 연상케 하는 것이 코뿔소의 뿔을
삶에서 기억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줄까? 더군다나 무의식 속에서의 기억이라면!기억에 대한 우리의 확신과 정확도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오차가 있을까?역대급 편집증과 과대망상증으로 누구에게도 제약받지 않는 상상력 속에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시계를 그리며 스스로 천재성을 입증한 예술가가 있다.어릴 적 보았던 밀레의 ‘만종’ 앞에서 ‘어린아이의 시체가 담긴 관이 보인다.’라고 비명을 질렀던 소년은 회화뿐만 아니라 광고, 영화, 조각,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명성을 날리며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초현실주의 세계를 펼치는 천재
1893년 6월, 고갱은 타히티에서의 2년간의 삶을 정리하고 파리로 돌아온다. 파리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내 메테를 찾는 것이었으나 그의 아내는 이미 고갱에게서 완전히 멀어져 있었다.또한 그는 이국적 풍경과 파격적인 색채의 타히티를 배경으로 그린 작품들을 동료 화가들에게 보여주었으나, 그의 작품에 대한 미술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일부 미술관에서는 그의 그림을 전시하는 것 자체를 거절하는 사태가 발생하며 그는 다시 파리 생활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그러한 가운데 그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다. 숙부로부터 재산을 상속받
폴 고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바로 타히티다.자신의 예술 세계를 완성할 희망을 찾아 남태평양의 외딴섬 타히티로 향하는 배에 오른 고갱은 그곳이야말로 작품에 예술적 영감을 가져다줄 지상 최고의 낙원으로 문명이 차단된 원시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신을 맞이할 것이라 믿었다.그러나 두 달이 넘는 배에서의 여정을 견디며 도착한 타히티는 프랑스의 식민 치하에서 원주민의 삶은 무참히 파괴되고 그곳 어디에도 자연의 순수성을 지닌 독자적인 문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타히티의 여인들은 남태평양의 화려한 색상의 꽃무늬 옷 대신 그곳의
1888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12월 23일 늦은 밤 술에 만취한 고흐가 왼쪽 귀에 붕대를 감고 아를의 사창가에 나타나 라셸이라는 매춘부에게 신문지 뭉치를 내밀었다.“이걸 잘 간직해요.”내용물을 확인한 라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비명을 질렀다.고흐가 건네준 신문지 뭉치 속에는 사람 귀의 일부분으로 확인되는 내용물이 들어 있었다.이날 저녁 고흐는 아를을 떠나겠다는 고갱의 말을 듣고는 화가 나서 산책을 나선 그를 뒤쫓아가 면도칼로 위협하며 욕을 했었다. 불안감을 느낀 고갱은 그날 밤을 호텔에서 보내고 12월 24일 아침에 집으로 돌
미술사에 전해오는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고흐와 고갱에 관한 이야기만큼 다양한 연구와 해석이 나오며 논란이 되는 사례도 드물 것이다.고흐는 왜 스스로 귀를 잘랐을까?고갱에 대한 질투심이었을까?두 사람은 동성애 관계였다는 말이 사실일까?아니야! 고흐의 귀를 자른 사람은 바로 고갱이야!우리들의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수많은 이야기와 저작과 영화의 사례에서 아직 확실한 해답을 찾지 못한 현재, 필자의 이야기가 또 한바탕 논란의 여지를 가져올까 하는 걱정도 있지만 필자가 바라본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객관적 시각으로 풀어보고자 한다.고갱과 고흐
“나는 미개인이다. 문명은 첫눈에 그 사실을 알아챈다. 나의 작품에는 당혹스럽거나 경악스러운 부분이 전혀 없다. 다만 나로서도 어찌하지 못하는 야성적 기질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작품의 모방은 불가능하다.”폴 고갱은 19세기 후기 인상파를 이끈 프랑스의 화가로 제도화된 문명을 거부하고 인류의 근원과 원시적 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며 직접 실천했던 인물로 우리에게는 빈 센트 반 고흐가 자신의 한쪽 ‘귀’를 자르게 한 동기를 부여한 인물로 더 유명세를 치르는 화가다.소설 ‘달과 6펜스’의 내용처럼 증권거래소의 주식중개인으로 일하
어둠이 깔린 시간, 도심 속 화려한 불빛을 지나 파리의 빈민가 모퉁이에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허름한 여관의 문을 열고 방금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섰다.그의 양손에는 화구박스와 이젤이 들려져 있었고 빵 한 조각으로 하루를 견뎌낸 그의 몸은 축 늘어진 채 발을 내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오염으로 얼룩진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찰스 스트릭랜드, 그는 6개월 전부터 이 여관의 가장 저렴한 구석진 방에서 묵고 있다.한때는 잘나가는 증권거래소의 주식중개인으로 영국에서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으나, 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