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 정영만 선생

사진제공 : 김상현 기자
사진제공 : 김상현 기자

지난 현충일, 남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 정영만 선생(65)은 한산도 앞바다가 바라다보이는 이순신 공원에서 ‘수륙새남굿’을 했다. 남해안별신굿보존회의 정기발표공연이지만, 사실 이날의 굿은 통영의 보도연맹 희생자를 비롯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제였다. 스승이셨던 고모할머니 정모연 보유자의 죽음 앞에서 눈물로 약속했던 일이다.

“1990년에 고모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시신을 화장해서 한산도 앞바다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하셨습니다. 죽어서 남편 곁에 가겠다는 뜻으로 그런 유언을 하신 겁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남해안별신굿의 초대 보유자였던 정모연 선생은 남편이 빨갱이라는 오명을 쓰고 한산도 앞바다에 수장되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보아야 했다. 항남동 멸치창고에 갇혀 있을 때 어떻게든 꺼내 보려고 발을 동동 굴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굿을 하러 간 사이 아기와 함께 잡혀간 남편 김상문 씨는 그렇게 국가의 손에 죽었다. 김상문 씨뿐 아니라 그 집 3형제가 모두 빨갱이로 지목돼 한산도 앞바다에 수장됐다.

“보도연맹도 아니었어요. 그저 한 사람의 손가락질 한 번에 온 가족이 빨갱이가 됐지요.”

정영만 선생의 작은할아버지도 명정동 절골에서 희생됐다.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보면, 남동생은 절골에서, 여동생의 남편은 한산도 앞바다에서 학살된 것이다.

“할아버지가 밤에 몰래 절골에 가서 켜켜이 쌓여 있는 시체 속에서 작은할아버지를 찾아다 여우바위 아래 묻어주었다고 합니다. 희생된 두 분 다 자손 하나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정영만 선생은 고모할머니인 정모연 보유자의 제자가 되어 무와 악을 익혔고, 그 뒤를 이어 인간문화재가 되었다.

“이런 비극이 어디 있습니까? 제 손으로 고모할머니의 뼛가루를 바다에 뿌리는데, 너무 가슴이 아파 미치겠더라고요. 그래서 꼭 민간인학살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한 제를 지내드리겠다 속으로 약속을 했던 겁니다.”

해마다 굿을 할 수는 없었다. 두 해 만에, 세 해 만에 하기도 했지만 형편이 되는 대로 한산도 앞바다에 매몰돼 있는 수많은 영혼들을 위한 작은 정성을 바쳤다.

가족들은 작은할아버지와 고모부할아버지를 빨갱이로 지목한 사람을 알고 있다. 특히 희생된 작은할아버지 정평호 씨는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에 힘을 보탠 이력이 있는데, 오히려 일제 앞잡이를 하던 이가 빨갱이로 지목한 것이다. 허황된 손가락질로 수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해군 출신의 그는 이후 통영 문화예술계에서 그럴싸한 족적을 남기며 선생 노릇을 하다 죽었다. 그 자손과 제자들도 아직까지 통영에서 얼굴을 대하며 살고 있다.

“말못하며 산 세월이 70년 아닙니까? 저는 참 이상한 것이, 억울하게 희생됐는데 피해자 쪽에서 오히려 쉬쉬하는 겁니다. 지금도 통영은 보도연맹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에도 제주4.3 추모제에 참여했더니 ‘빨갱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온갖 매스컴을 통해 제주4.3이나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심지어 대통령이 나서서 사과를 하는 판에 통영의 시계는 참 더디게도 흘러간다.

정영만 선생이 비극적인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된 것은 비단 가족사의 영향만은 아니다. 11대째 세습무를 이어오면서 그는 젊은날 가업에 대한 깊은 회의와 통찰을 하게 됐다.

“제가 어렸을 때 고모할머니나 아버지는 참 존경받는 분이었습니다. 당시 무당은 의사이기도 하고 정신적 지주이기도 하고, 온 마을의 어머니 같은 역할을 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세습무가 아주 천하게 여겨지기 시작했어요.”

온나라가 새마을운동으로 떠들썩하던 그때, 나라에서 앞장서서 ‘미신 타파’에 나섰다. 음력도 사라졌다. 한참 세계관이 자랄 나이였던 중학생 정영만은 가업이 천시받는 이유를 알고 싶어 역사를 공부했다. 그러면서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조우했다. 그 비극은 소년 정영만의 가족사와도 맞닿아 있었다.

“민간인학살 피해자를 위해 혼자 굿을 해온 게 17~18년입니다. 고모부할아버지와 그때 죽은 억울한 원혼뿐 아니라 수백 년 전 한산대첩에서 죽은 사람들까지, 모든 길잃은 영혼들을 달래주고 싶어 한 일이지요. 이번에 통영신문에서 민간인학살 피해자들을 조명한 것을 알고 너무 감사하고 반가웠습니다. 유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유가족회가 만들어지는 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정영만 선생은 통영의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그 속에 묻힌 죽음을 생각한다. 오랫동안 가슴에만 묻고 있던 일, 죄인이 아니면서 죄인처럼 숨죽이며 살아왔던 모든 이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는 역사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분연히 일어설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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