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한사람으로 돌아가는 길

강혜원 시의원
강혜원 시의원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한 일이지요. 하고 싶어 시작한 정치는 아니었지만, 16년 동안 상임위원장 한 번, 부의장 두 번, 의장 두 번을 지내면서 정치인으로서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는 다 내려놓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조용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4선 의원인 강혜원 전 통영시의장(65)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주변에서 밀어주겠다는 지지자들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막상 결정하고 나니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새삼 진리라고 느낀다.

강혜원 의원은 군대 3년을 제외하면 통영을 떠나본 적이 없다. 아내도 용남면 사람을 맞았으니, 뿌리 깊은 통영인인 셈이다.

강혜원 의원의 집안은 통영의 기독교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907년 마포원 호주선교사가 남선 순회를 할 때 통영교회(현재 충무교회)에 출석하던 하강진 씨가 자택에 표식을 세워 설립한 교회가 미수교회다. 115년 전 그때, 강혜원 의원의 증조부모는 미수교회 설립 멤버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중매로 아내를 처음 봤는데 상당히 예쁘더라고요. 믿음도 좋고 착하고…. 그래서 두 말 않고 결혼했지요. 하긴 저도 제대한 후에 충무상호신용금고에 입사했기 때문에 ‘은행 다니는 건실한 청년’으로 소개를 했겠지요?”

말끝에 붙인 “나도 뭐, 키만 좀 딸리지” 하는 사족에 웃음이 한가득이다.

삶의 첫 위기는 IMF 때 찾아왔다. 22년간 근무한 회사가 문을 닫고 만 것이다.

“김해에 있는 기도원에 가서 ‘앞으로 뭘 할까요?’ 하면서 기도를 했어요. 애들은 학생이었고, 무엇을 먹고 살까, 어떤 직업을 가질까 하는 것이 고민이 됐지요. 그후 시작한 것이 ‘미소가 있는 꽃집’입니다.”

미소는 딸의 이름이기도 하고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기도 하다. 아내는 꽃을 포장하고 강 의원은 배달을 하는 자영업자의 삶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꽃집으로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장사가 너무 잘됐어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관계를 쌓아온 사람들이 다 손님이 되어 준 거예요. 금융기관에 있었기 때문에 경제인들을 많이 알았거든요. 그러면서 남는 시간에 지역을 위해 봉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 시작한 일은 주민자치위원회 간사였다. 은행 출신이기 때문에 재무관리 등에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조금씩 역할이 커진 다음에는 주민자치위원장이 되었다. 김명주 국회의원의 요청으로 운영위원회 간사도 맡게 됐다. 그 무렵 정당 공천제가 생겼다.

“2005년일 겁니다. 당시에는 장사가 너무 잘 되었기 때문에 정치에는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김명주 국회의원이 ‘같이 일하자’고 강권하고, 당에서 공천을 받게 돼서 2006년에 시의원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내리 4선에 당선되며 강혜원 의원은 봉평, 도남, 미수 지역의 시의원으로 일했다.

“제가 처음 시의원을 시작할 때는 제대로 된 도로 하나 없었어요. 16년 동안 도로가 뚫리고, 미수 해양공원이 생기고, 물량장들이 생겼습니다. 2000년대 초의 지도를 보면 지금의 모습과 사뭇 다릅니다.”

어떤 지지자는 강혜원 의원 앞에 ‘지도를 바꾼’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16년 의정 세월이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탈당과 복당을 두 번이나 반복했기 때문이다.

“처음 탈당은 김명주 국회의원 때문이었습니다. 저를 처음 정치로 이끌어 준 분이 김의원님이신데, 그분이 2008년 총선에서 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됐습니다. 그러니 김의원님에 대한 의리로 같이 탈당을 하게 됐지요. 김의원님은 2012년 19대 총선 전에 복당을 했는데 저더러 같이 복당을 하자 하시더라고요. 저는 안 한다고 했습니다. 이군현 의원이 다음에도 공천을 받으면, 김명주 의원을 모시는 입장이 어떻게 되겠어요? 하지만 다음 선거에서는 김명주 의원을 밀겠다는 이군현 의원의 약속이 있어서 결국 복당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군현 의원의 약속은 지킬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김명주 의원이 2014년 담도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두 번째 탈당은 2020년 12월에 있었다. 당시 강혜원 의원은 8대 통영시의회 후반기 의장선거에 도전했다가 ‘당론을 어겨 해당행위를 했다’는 사유로 징계위에 회부되어 있었다.

“당론을 어겼다는 말은 한 마디로 국회의원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 아닙니까? 민주당과 밀약하는 것이 해당행위이지, 의장에 도전하는 것이 해당행위입니까? 당에서 제명을 시키려 하니, 어쩔 수 없이 탈당을 하게 됐습니다.”

의장 출마를 부추기고 표를 주지 않은 동료의원들에 대한 배신감, 욕심이 과했다는 반대자들의 비난, 바보가 된 것 같은 자괴감에 괴롭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은 치유를 선물하며 흘러갔고, 다음 지방선거를 앞두고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정하니 마음은 한결 가볍다.

“지난 16년 동안 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마을을 돌았습니다. 하루는 미수동 쪽으로 돌고, 하루는 도남동 쪽으로 돌면서 운동도 하고 민원을 들은 거지요. 앞으로도 이 일은 계속하려고 합니다. 후배 시의원에게 주민의 의견을 전달하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시민으로 돌아가는 길, 아쉬움보다 설렘이 더 큰 건 왜일까? 새벽에 걷는 골목골목에 그동안 쌓인 사연들이 새 출발을 응원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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