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한 식 <br>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br>
정 한 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초등학교 때 나에게 주어진 중요한 일은 가축을 돌보는 것이었다. 소는 농사일을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가축이다. 논밭을 갈고 일구는 일이 모두 그에 의존하여 소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누구네 집에 어느 정도 힘이 세고 덩치 큰 소가 있는가가 부자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소를 몰고 동네 뒷산으로 가서 풀을 먹이는 일이 나에게 주어진 일과였다. 우리집의 덩치 큰 소, 누렁소는 나의 말을 잘 들었다. 나는 그의 주인 노릇을 톡톡히 하였다.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소고삐로 엉덩이를 때리기도 하고, 학교에서 마음 상한 일이 있을 때에도 누렁소에게 화풀이를 하였지만 굵직한 목소리로 울음 한 번 울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나와 소통하는 소중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의 배가 탱탱하게 부른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발걸음이 가벼웠고 할머니로 부터 듣는 칭찬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산에서 누렁소를 잃어버려 온 산천을 돌아다니던 기억도 생생하다. 늦은 밤에 집으로 홀연히 찾아온 그를 보고 눈물이 나기도 하였고, 온 가족이 반가워하기도 하였다. 단순한 가축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지난 1년간 미국에서 지낼 때 고국 가족들의 소식이 늘 궁금하였다. 화상 통화를 하게 되면 긴장도 하지만 기대가 더 컸다. 안부를 나누고 얼굴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아들과 며느리의 얼굴이 밝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손자들의 재롱도 이어지고 앞 다투어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덕분에 향수병을 해소하기도 하였다. 큰 손자가 거북이를 키우고 있었다. 거북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먹이를 주며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영상 통화를 할 때에는 어김없이 거북이 노는 모습을 보여준다. 손자의 카카오톡 정보란에는 온통 거북이 사진과 소식들로 가득하다. 거북이를 키우는 데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미국에 할아버지 만나러 올 수도 없다고 하였다. 귀국하여 보니 수족관에 램프를 설치하여 밤과 낮을 구별하여 주고, 먹이를 줄 때에는 한 마리씩 별도의 작은 수족관으로 옮겨서 먹이를 주고 있었다. 마치 식탁에 앉혀 밥을 주는 엄마의 모습이 연상될 정도로 정성이 가득하였다. 손자의 거북이 사랑은 자연과의 교감을 넘어 생명존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나의 유년 시간을 같이 하였던 누렁소에 대한 생각과 겹쳐졌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그리고 우리들로 구성된 대가족이 같이하던 그 시절의 우리집 모습이 확연히 기억 속으로 들어온다. 그 속에 누렁소도 함께 하였다. 지금 나의 손자도 사랑하는 부모님 그리고 동생과 지내고 있는 지금의 시간 속에 거북이 돌보는 것이 훗날 큰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생각하여 보니 손자는 자연의 생명체와 교감하며 행복을 찾는 나와 같은 DNA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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